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릭 앤키엘 (문단 편집) === 촉망받던 루키 === [[파일:앤키엘.gif]] 해당경기는 1999.08.29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이다. 상대 선발은 [[존 스몰츠]]였으며, 이 경기에서 앤키엘은 6이닝 5피안타 2실점 2자책 '''5볼넷''' 3탈삼진 108구를 기록 하였고, 스몰츠는 8이닝 6피안타 3실점 3자책 4볼넷 7탈삼진 1피홈런 112구를 기록하였다. 경기는 12회 연장까지 간 끝에 브레이브즈가 4대3으로 이겼다. 앤키엘은 플로리다주 포트피어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혹하리만큼 그에게 야구를 시켰고, 때문에 앤키엘은 항상 실수하면 안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야구를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는 고등학교에서 그의 근면함과 성실함 등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는 프로가 되어서도 그랬다. 또한 그의 엄청난 구위를 만든 투구폼 역시 그의 아버지가 틀을 잡아 가르친 투구폼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낚시 가이드로 살던 중 [[마약]] 밀매상과 엮이며 범죄자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25년 간 14차례 체포되었고 6번 구속되었다. 앤키엘이 풀타임 선발투수로 데뷔하던 2000년에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았는데, 앤키엘은 이 법정에 출두해서 담담하게 그의 아버지가 징역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997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받은 앤키엘은 마이너리그에서 불같은 탈삼진 능력을 보이며 많은 스카우터들의 혼을 쏙 빼놓았고, 1999년에 빅리그에 콜업되었다. 당시 앤키엘의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는 1999 2위, 2000 1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에 첫 풀타임 선발 투수로서 시즌을 보내면서 11승 7패 197탈삼진 평균자책점 3.50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제구가 완벽하지 않아 볼넷은 적지 않았지만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보여주며[* 2000시즌 앤키엘의 9이닝당 탈삼진은 10개로, 이는 12.6개를 기록한 '빅 유닛' '''[[랜디 존슨]]'''에 이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신인왕 투표 2위에 올랐다.[* 1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라파엘 퍼칼]].] 이런 앤키엘의 활약에 흠뻑 빠진 세인트루이스의 [[토니 라 루사]] 감독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NLDS 1차전 선발로 앤키엘로 결정, [[그렉 매덕스]]와 맞붙게 한다. 당시 카디널스 선발진에는 20승을 거둔 [[대럴 카일]]도 있었고, 사이영 위너 출신인 팻 헨트겐도 있었기에 앤키엘의 1차전 선발 내정을 두고 많은 팬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냈다. 물론 라 루사로써도 한번 걸어볼 만한 선택이었던 것이, 1차전에 앤키엘이 나오고 1차전 시작 전까지 3일의 휴식을 취한 팀의 에이스 카일이 2차전에 나오면 두 투수를 같은 시리즈에 모두 한번 더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앤키엘과 호흡을 줄곧 맞춰왔던 [[마이크 매시니]]가 디비전시리즈 직전 부상을 당했고 앤키엘은 백업 포수이던 카를로스 에르난데스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이 역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